이소선합창단과 합창단 그날은 2023년 1월 14일 일요일 박종철 열사 37주기 추모제에 함께 했다. 추모제는 그의 묘지가 자리한 마석의 모란공원에서 있었다. 지난 해엔 추모제 때 비가 왔었다. 올해는 눈이 예보되어 있었다.
박종철 열사의 추모제에 올 때마다 37년전 생을 마감한 종철의 나이를 돌아보게 된다. 경찰의 고문으로 숨졌을 때 그의 나이는 22살이었다. 22살은 세상의 어디에서나 나이만으로 축복이 되는 푸른 청춘의 나이이다. 그냥 스물두살이라 불러보는 것만으로 그 나이는 가슴 뛰는 뜨거움이 된다. 그러나 종철의 나이는 정반대이다. 생의 마감으로 22살에 멈춘 그의 나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슬픔이 되었다. 사람들은 슬퍼하는 한편으로 그를 기억하고 그가 걸어간 길을 이어가는 것으로 그 슬픔에 대한 작은 희석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추모제를 찾았다.
두 합창단이 부른 노래는 두 곡이었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 첫 노래였다. 11시에 시작된 추모제를 위하여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을 것이다. 이제 막 세상을 밝힌 아침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노래는 “그대 노여움으로 반역의 어두움 뒤집어 새날 새날을 여는 구나”라고 했다. 종철이 또한 그랬다. 22살의 그를 잃은 슬픔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분노로 이어졌고 그 분노가 우리에게서 새날을 열기에 이르렀다. 마치 그때의 새날처럼 종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시간에 아침이 열렸다. 오늘 이곳에선 그가 새날을 여는 아침이었다.
두 합창단은 두 번째 노래로 <그날이 오면>을 불렀다. 종철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라는 설명이 있었다. 해방의 기쁨으로 열리는 ‘새날’과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그날은 사실은 같은 날이다. 합창단은 그가 꿈꾼 날을 다른 노래로 계속 노래 속에 담았다. 나중에 모든 사람들이 <그날이 오면> 다시 함께 불렀다. 모두가 바이러스 앓듯 감염된 그날에 대한 꿈이 그 자리에 있었다.
추모제가 끝난 뒤 길을 내려가다 이소선합창단과 합창단 그날은 전태일의 묘에 들렀다. 마석의 모란공원은 민주 인사들이 많이 묻혀 있어 특히 이소선합창단이 자주 찾는 곳이었으나 근래에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온 길에 합창단은 전태일의 묘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대개 노래는 추모제에 온 사람들을 향해 부르나 전태일의 묘 앞에선 전태일을 바라보며 불렀다. 그 순간의 그 노래는 그를 위한 노래였다.
우리는 37년전 22살의 그를 잃었다. 사람들은 매년 잊지 않고 찾는 추모의 걸음으로 그 슬픔을 조금이라도 희석시켜 보려 했으나 그러한 추모의 시간으로도 그 슬픔을 희석시키기엔 역부족인가 보다. 지난 해는 비가 내려 그 슬픔을 대신하는 듯하더니 올해는 추모제 행사가 끝나자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때로 어떤 슬픔은 아직은 추모의 걸음만으로는 무마가 되지 않는가 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눈발이 눈물처럼 날리는 날이었다. 동시에 사람들이 그 슬픔 속에 분노를 꾹꾹 눌러담아간 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