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은 2024년 4월 20일 토요일,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을 찾아가 이곳 공장의 옥상에 올라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두 노동자와 함께 했다. 두 노동자의 이름은 소현숙과 박정혜이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이곳 공장에 불이 나자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도망가 다른 곳에 공장을 차렸다. 두 노동자는 고공에 올라 공장의 철거를 막으면서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시인 김주대의 시에 의존하면 새는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 <진화론>은 “벼랑 끝에 이른 삶”이 “허공에서 길을 찾”을 때 우리가 그 자리에서 보는 것이 새이며, 때문에 시인은 “땅에서 추방된 새는 하늘에 터널을 뚫는다”고 말한다. 시인의 시는 자본가가 지상에서 일터를 없애 삶의 길을 지웠을 때 노동자들은 새처럼 고공에 올라 그곳에서 길을 찾는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노동자가 새로 진화할 수는 없다. 때문에 시인은 고공에 올라 길을 구하는 노동자가 길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허공을 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진화로 답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다행이 우리들은 그 진화의 답을 구한 적이 있다. 시인은 그 답을 <김진숙>이란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시로 알려준다. 시에 의하면 김진숙은 “고공의 크레인에서/인간의 궁극을” 울었던 노동자이다. 시인은 그 노동자의 이름으로 건넨 시를 “살아서 뚜벅뚜벅 내려오시라”라는 말로 맺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김진숙이 날개를 가진 새가 아니었음에도 고공에 올라 길을 냈음을. 그리고 그때 길을 내는데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한 노동자의 주장에 마음을 같이한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가 날개가 되었음을. 연대가 이룩해낸 집단적 진화이다. 고공에 오른 노동자는 연대의 힘을 날개 삼아 지상으로 내려오기에 이른다. 그리고 다리를 날개로 삼아 찾아낸 길을 걷고 그 길에서 새로운 노동 세상의 지평을 연다. 버려진 구미의 공장 건물에서 두 노동자가 고공에 올라 다시 그 길을 찾고 있다.
이소선합창단은 자본이 버리고 간 공장을 노래로 채웠다. 첫 두 곡은 합창단의 소프라노 최선이가 이응구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부른 <민주>와 <전태일 민중의 나라> 였다. 첫 노래는 “너는 바람 불꽃 햇살”이라고 말한다. 민주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노래는 이번에는 민주의 양보를 얻은 뒤 잠시 공장 옥상으로 날아오르고 그 말을 두 노동자에게 내민다. 그렇게 때로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위하여 고공에 오른 노동자가 바람과 불꽃, 그리고 햇살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 노동자가 꿈꾼 세상은 두 번째 노래에서 전태일이 꿈꾼 민중의 나라와 겹쳐진다. 노래는 그 “민중의 나라”가 “노동의 깃발 드높이 드높이 높이 솟아 맞이하”는 나라라고 알려준다.
최선이의 노래에 이어 합창단 모두가 무대에 올랐다. <산디니스타에게 바치는 노래>, <나를 일으킨 친구>, 그리고 널리 알려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불렀다. 세 곡의 노래 중 첫곡은 “피땀의 찬란한 꽃”으로 피워내는 “우리 새세상”에 대한 꿈을 노래에 담았다.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싸우다 쓰러지는 사람도 나온다. 놀라운 점은 그러면서도 싸움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나를 일으킨 친구>가 노동자들이 이어가는 그 놀라운 싸움을 노래한다. 쓰러진 노동자가 “내 심장을 깨”우고 “나의 여생을 너의 다음 생으로” 이어주는 세상이다. 노동자가 자본의 탐욕을 이기고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합창단의 노래는 자본이 돈의 힘으로 아무리 속박하려 해도 노동자들이 끝내는 “푸르른 솔”로 삶을 이어가 자본의 속박을 끊어내고 “살아서 만나리라” 말했다.
합창단 단원 다섯 명으로 꾸린 중창단이 다음 순서를 맡았다. 다섯은 목소리를 모아 <떨림>과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불렀다. 노래가 “너의 하루가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를 말할 때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옥상에 올라 고공 투쟁을 마다하지 않은 두 노동자가 엮어내는 하루란 것을. 다음 노래는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라고 했다. 노래는 마치 옥상의 노동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 같았다. 아래서 부른 노래였지만 노래는 위로 올라가 고공에 선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다.
중창단의 노래에 이어 합창단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 <대결>과 <나하나 꽃피어>, 그리고 <그날이 오면>을 불렀다. 노래가 “뜨겁게 다가오는 숙명의 대결” 앞에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내가 꽃을 피우고 너도 꽃 피”워 “온세상 풀밭이 꽃밭되는” 세상을 말했다. 마침 두 노동자가 옥상에 올라 있었다. 두 노동자는 나와 너의 둘이 피운 꽃이었다. 노래는 그 꽃밭의 세상이 ‘그 날’이란 이름으로 오리라 했다.
앵콜로 두 곡의 노래를 더 불렀다. <진군의 노래>와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불렀다. 노래는 “깨지고 짓밟혀도” “노동 해방 위해” 진군하는 노동자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터를 보장받지 못하는 부당한 자본의 횡포에 상처받은 노동자의 영혼에게 “마주 잡을 손 하나”를 노래로 내밀었다.
버려진 공장 건물의 화단 한켠에서 풀들 사이로 노란 민들레가 꽃을 내밀고 있었다. 민들레는 버린 공장의 화단에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은 뒤 바람을 타고 새공장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꽃을 피운 민들레는 그곳에서 외침이 된다. 그 외침은 이렇게 말할 것이 분명하다. 먹튀는 범죄이다. 고용 승계하고 노동자의 일터를 보장하라. 이소선합창단은 버려진 공장을 노래로 채웠다. 민들레가 고공에 오른 노동자의 구호를 안고 날아갈 때 노래는 민들레의 씨앗을 실어나를 바람의 부력이 될 것이다.
공연을 끝낸 합창단을 향하여 옥상의 두 노동자가 마치 바람에 실려 떠나는 민들레를 보내듯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었다. 빗길을 달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버스 속의 모두가 마치 민들레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