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은 2024년 2월 15일 목요일, 세종호텔 노조 투쟁문화제에 함께 했다. 하루 전만 해도 마치 여름 문턱까지 간듯했던 날씨는 명동에서 올려다 보이는 남산의 나무들을 눈으로 하얗게 채색할 정도로 급격하게 바뀌어 있었다. 모두가 다시 겨울옷으로 몸을 단단히 여미고 있었다. 날씨는 많은 것을 위축시킬 수 있다. 하지만 세종호텔 노조의 집회는 겨울 날씨를 막아서는 여러가지 것들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먼저 그곳에는 밥이 있었다. 밥차로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밥통에서 함께 했기 때문이다. 밥은 우리의 속을 채워 힘이 된다. 속을 채운 몸은 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열기를 방패처럼 갖추는 법이다. 이소선합창단의 단원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모두 집회 시작 전에 밥통에서 마련한 식사로 먼저 배를 채워 힘을 냈다. 겨울 추위를 막는 1차 전선이었다.
다른 곳에서 추운 날씨를 마다 않고 연대를 위해 찾아와준 노동자들은 그 연대의 뜨거움으로 겨울 날씨를 막는 2차 전선이 되었다. 외로운 싸움은 힘겹고 날씨마저 더 춥게 느껴지게 만들지만 함께 하는 싸움은 용기를 북돋우고 마음을 뜨겁게 해준다.
집회의 사회자가 고품격의 합창단이라고 소개를 하고 합창단의 사회자 김우진이 고품격 합창단 맞다고 받아들인 이소선합창단은 노래로 겨울 추위를 막는 3차 전선을 만들어냈다. 모두 두 곡의 노래를 불렀다. 첫노래는 <상한 영혼을 위하여> 였다. 부당 해고는 노동자들에게 큰 상처이다. 세종호텔 노조의 집회에서 일자리가 단순히 돈을 버는 자리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제공한 서비스를 통해 삶의 의미가 되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돈은 어디에서도 벌 수 있지만 삶의 의미가 된 일자리는 뺐기기 어렵다. 그 자리를 뺐긴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뺐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래는 그런 일자리를 뺐긴 노동자들의 다친 영혼에 바치는 위로였다. 노래는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라고 예언했다. 노래는 그들을 마주 잡을 손을 예언했지만 노래 자체가 바로 그 손이기도 했다. 연대하러 온 다른 노조의 노동자들도 그 손이었다.
합창단이 부른 두 번째 노래는 <나를 일으킨 친구> 였다. 날은 추웠지만 우리는 또 알고 있다. 오늘의 추운 날이 봄을 가로막지는 못한다는 것을. 노조 집회 자리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길고 오랜 싸움은 봄을 의심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봄에 대한 믿음을 그 자리에 선 노동자들로 확인시켜 준다. 때문에 한 노동자의 쓰러짐이 싸움의 끝이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을 일으키는 힘과 뜨거움으로 작용한다. 쓰러짐이 노동자를 주먹 쥐게 하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다. 그곳에 바로 그렇게 일어난 노동자들이 모여 부당한 정리 해고와 복직을 외치는 목소리로 일어서 있었다.
앵콜곡을 불렀다. <산디니스타에게 바치는 노래>가 앵콜곡이 되었다. 노래는 “우리가 지은 밥과 만든 옷들과 우리가 쌓은 벽돌 모두가 우리에게로 돌아”와 “기쁨과 자유 평등”을 누리고 “만인의 평화”에 이르는 세상을 노래했다. 이곳에선 호텔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제공한 모든 서비스가 고객들의 즐거움이 되고 그 즐거움을 삶의 의미로 삶았던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는 세상이 그 평화의 세상으로 가는 출발점이었다.
봄으로 가는 듯하다 갑자기 표정을 싸늘한 추위로 바꾼 계절의 변덕 앞에 많은 것들이 그 추위를 막는 전선을 펼쳤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전선은 오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는 세종호텔 노조였다. 싸움의 주체가 없으면 어떤 싸움도 불가능하다. 세종호텔 노조가 처음 싸움을 시작한 것은 2013년 5월이었다고 한다. 10년 세월을 넘기고도 그들은 꺾이지 않고 있다. 그 세월 속에 얼마나 많은 겨울날이 있었겠는가. 그 시간을 넘어 최전선에 선 그들이 사실 추위를 막아내는 가장 큰 전선이었다. 밥이, 다른 노동자들이, 그리고 노래가 그들과 함께 추위에 맞서 변함없이 싸움을 펼쳤다. 곧 봄이 올 것이다.